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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서봉석(sbs3039)
포에라마라는 장르는(Poem + Drama)시를 형용동작이 있는 일인 시극으로 좀 더 즐길 거리가 있는 입체적 종합 예술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개척하고 시연한 시인으로는 포에라머 공혜경이 있다.


사랑하기에  바빠서 늙을 틈 없네. 포에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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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좌표
2024-04-17
조회수 : 32


 

봄의 좌표

 

권 혁 수

 

벚꽃 잎이 하얗게 흩날린다. 솜 같은 버드나무 화분(花粉)도 뽀얗게 봄 하늘을 덮고 날아다닌다.

, 봄이다!하는 탄성이 공원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팝콘 터지듯 들려온다.

 

나는 오늘도 유튜브를 켜고아씨미워도 다시 한 번연속극 OST를 듣는다. 이미자와 남진이 부른 그 노래를 들으면 마치 어린 시절 고향마을로 돌아가는 완행열차를 탄 기분이다.

이젠 꿈같은 영상이지만 그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은 저녁마다 우리 집에 모여앉아 연속극을 보면서 울고 웃고 그랬다. 주인공남자가 바람을 피워 부인을 몹시 힘들게 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주머니들은 남자를 향해 분노했고 여자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단골손님은 은경네 아주머니와 함씨네 아주머니였다. 은경네 아주머니는 고향이 철원인데 춘천으로 시집을 와서 우리 뒷집에서 살았다. 남편이 하필 6.25 전쟁이 나기 바로 삼일 전에 3.8선 이북, 화천에 사는 형님 댁에 다니러갔다가 그만 생이별을 하게 됐다고 한다. 또 함씨네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향교 옆에 살았는데, 남편이 1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불온한 사상(思想)에 물들어 훌쩍 집을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하여 졸지에 생과부가 된 그 분들은 드라마가 자신의 기구한 역사인 것처럼 여겨 어지간히 서러워들 하셨다.

 

또 한 분 어머니의 유일한 소꿉동무인 심교장댁 아주머니는 봄이면 연두색 치마저고리에 옥색고무신을 날렵하게 신고 놀러 오시곤 했다. 우리 어머니 보다 두 살이 위였지만 어찌나 자태가 고우셨는지 모두들 우리어머니가 언니인 줄 알 정도였다. 여하튼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를 꼭 옥자언니라고 부르셨다. 남편이 교장선생님이었고 아들 3형제가 다 공부를 잘 해서 훗날 모두 훌륭하게 되어 눈물 흘릴 일이 없을 것 같은 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가는 날이면 연속극을 함께 보며 눈물을 짓곤 했다.

그런데 정작 TV주인인 우리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으셨다. 그만한 사연이 없어서가 아니라 초저녁잠이 많아서 그랬다. 연속극이 시작되면 바로 주무셨다가 다 끝나고 나면 부스스 깨어나 내용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 누군가 대충 설명해주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혀를 차셨다. 그러면 또 누군가그렇게 잘 거면 텔레비전은 왜 샀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면 모두들 눈물 젖은 얼굴로 배를 쥐고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그렇게 울고 웃고 나서 아주머니들은 각자 가져온 시루떡이나 과일을 나눠드시며 동네 안에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했다. 동네 소문이란 게 대개 그렇듯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이긴 해도 간혹 누구네 딸이 더 이뻐졌다느니 또는 누구네 이혼한 딸이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남자와 눈이 맞았다느니...... 흥미로운 것들도 더러 있었다.

 

심교장댁 아주머니의 소학교 동창들은 다들 시내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의 부인이거나 모친이었다. 하여 가끔 시내 큰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도 심교장댁 아주머니가 함께 가자고 해서 두 번인가 다녀오셨다. 다녀오시면 표정이 그닥 즐겁지 않아보였다. 이유는 호칭문제 때문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변호사 어머니, 병원원장님 모친, 혹은 사장 사모님이라 서로 호칭을 했다고 한다. 심교장댁 아주머니는 교장사모님 혹은 박사(교수) 어머니로 불린다고 하여

어머니는 뭐라 불러주던가요?”하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지점장 장모라 하더라.” 하시는 거였다. 큰매형님이 마침 시내 J은행 지점장으로 와계셔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자랑할 만한 신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인 어머니라 했을 텐데 좀 아쉽다.

그러던 어느 날은 모임에 가시지 않기에 , 안 가세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즈덜 동창횐데, 내가 뭐 하러 가서 멀뚱히 앉았냐. 거지도 아닌데.”하시는 거였다.

 

그런 분들이 이제는 모두 다 세상을 떠나셨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순서도 없이 떠나셨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종교적 추측뿐이다.

최근에 김상욱교수(경희대)죽음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물리학 강연을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들었다. 본래 우주의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는데, 모두가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돌도 모래도 책상이나 하늘의 별도...... 살아있는, 곧 인간을 포함해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란 어떤 신비로운 현상에 의해 아주 잠깐 지구에 나타난 고귀한 존재로, 생명이 다하면 죽은 상태로 다시 돌아가 원자로 분해된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어 데카르트를 등장시켜 그 소중한 생명의 위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는 좌표계를 만들어낸 철학자요 수학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허약하여 군대에 있을 때도 수시로 막사 침상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침상에 누워 천정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 그 위치에 대해 생각을 하다 문득, 파리가 공간상의 한 점인 것을 착안하여 X, Y, Z 세 개의 숫자로 표시, 기하학의 도형을 숫자로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대수학을 통합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다.

 

그 파리처럼 우리는 오늘 이 순간, 공간 어딘가에 위치하여 잠깐 동안 생각하며 존재하는 생명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침울하게 하소연을 했다.

나는 아내가 있어 존재한다네. 아내는 매일 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거든.”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고 욕을 바가지로 해대던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과 심교장댁 옥자아주머니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원자로 변해 이 봄에 어디쯤 위치해 계실까?

벚꽃 잎처럼 봄길에 흩날리고 계실까? 냇물 따라 흘러가고 계실까? 아니면 호수처럼 어딘가에 또 모여앉아 울고 웃고 욕을 바가지로 해대며 지내고 계실까?

봄이면 아씨미워도 다시 한 번’ OST를 들으며, 나는 갖가지 생각을 한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