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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포에라마라는 장르는(Poem + Drama)시를 형용동작이 있는 일인 시극으로 좀 더 즐길 거리가 있는 입체적 종합 예술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개척하고 시연한 시인으로는 포에라머 공혜경이 있다.


시 사랑하기  바빠 늙을 틈 없네. 포에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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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여름 산-권혁수 시인
2023-08-15
조회수 : 372

움직이는 여름산

 

권 혁 수

 

<인생은 이륜차를 타는 거와 같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새벽에 라디오를 켜자 아나운서가 들려준 아인쉬타인의 명언이다. 정신이 번쩍 났다. 얼른 일어나 움직이라는 경책인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드러누워 생각했다. 내가 왜 일어나야 하는 거지?

 

움직인다는 것은 곧 어디를 향해 간다는 것. 여름엔 더위를 피해 바캉스를 가는 게 일반이다. 자기 집 앞이 바로 피서지인데도 더 울창한 숲, 더 넓은 바다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마치 불타는 집을 뛰쳐나가듯.

나 역시 창원에서 근무할 때 그랬다. 바다가 코앞인데도 휴일이면 남해의 금산이나 여수 향일암, 목포 앞바다를 향해 아파트를 나서곤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그곳 바다에다 더위에 지친 몸과 외로움을 풍덩 던져 넣었다.

여수10경 중 하나인 향일암에 가던 날은 우연히 대구 경북지역의 원로목사님들 단체여행 팀과 함께 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향일암은 원효대사가 구름처럼 전국을 만행하던 중 세운 절이다. 하여 <종교가 다른 분들이 어떻게 오시게 됐냐?>고 물었더니 한 원로목사님이 <학창시절에 본 풍경이 다시 보고 싶어 왔노라>고 들려준다. 그리고 향일암에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섬들을 회상에 잠긴 눈으로 그윽하게 바라보신다. 나도 섬들이 머리를 내밀고 둥둥 떠 있는 남해바다에 더운 가슴을 적셨다. 남해바다는 그렇게 이해관계와 도시를 떠나온 사람들에게 정겹고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한 사람(원효)의 역사가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쉬게 한 그날의 정경을 회상하며 졸시 한 편 건져 올려보았다.

 

<여름산>

 

여름이/얼마나 더우면/()/남해(南海)에 빠져 머리만 내밀고/있을까

 

온종일 그을린 알몸에/파도만 끼얹고 있을까

 

입 다문/수평선 잡아당겨/갈매기 소리만 지르고 있을까

 

향일암에서 아파트로 돌아올 때는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된 어느 중년부부의 승용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대개의 중년부부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내내 무표정했고 말이 없었다. 하여 내가 여행자답게 이런 저런 말을 붙여보았더니 남편은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였고 부인은 현모양처 전업주부라 했다. 남편인 사업가는 아들과 딸이 소문난 대학을 나와 S시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출가를 하여 홀가분하게 아내와 여행이나 다닌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하지만 누군가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휴게소에서 차를 멈추고 남편이 잠깐 볼일을 보러간 사이에 부인이 내게 쉼표 없이 속삭였다.

<사실 자신은 노예처럼 살고 있다. 다른 남자들하고 절대 말도 못하게 하는데 오늘은 왠지 관대하다. 당신 때문인 것 같다. 만나서 반갑다.......>

부인은 하소연 같은 말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그 부부는 지금도 틈틈이 말 없는 여행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숨겨두었던 말을 하염없이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차가 주차장에 있거나,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위험하지 않다. 주차장이나 항구를 나가면 그때부터 난폭운전이나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네플릭스 영화 마르코 폴로에서 동방견문록을 쓴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려는 아버지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떠나 함께 가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만류한다. <불가능하다. 넌 앞으로의 혹독한 여정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과감히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아버지가 건네준 십자가를 목에 걸고 고난의 바다를 건너 몽고제국을 찾아간다. 세계정복을 꿈꾸는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을 만나러.......

 

어느 승려가 <조사는 왜 서쪽에서 왔습니까?(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라고 묻자, 조주 선사는 엉뚱하게도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라고 답을 주었다. 화두(話頭)를 던져준 것이다. ()명상의 참뜻을 살피게 하는 숙제를 주었다고나 할까.

조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達磨)를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달마는 서기520년경 남인도에서 캄보디아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와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참선을 하다 수제자 혜가(慧可)와 짚신 한 짝을 남기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갔다고 전한다. 이번엔 또 어느 세계의 정신적 균형을 잡으러 간 것일까?

 

사람으로 사는 동안 우리는 계속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그러다 최종엔 노인정이나 실버타운,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보니 L시의 어느 실버타운은 입주 시 25천만원 보증금에 매월 150만원을 내야한다고 한다. 또 누구는 독신으로 품위 있게 생활하자면 한 달 생활비를 최소 120만원, 둘이서는 200만 원 정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서민은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만 할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30대 때엔 아내와 함께 아이들 양육비를 벌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야 했고, 40대 때는 전셋집을 전전하느라 이곳저곳 2년마다 돌아다녀야 했고, 50대 때는 겨우 장만한 아파트 대출이자 갚느라 불철주야(不撤晝夜) 고심하고 뛰어다녔던 기억뿐이다.

요즘,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꿈지락거리고 있는가?

 

<우주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라고 물리학자인 안성혁교수가 안부전화 하던 중에 간단히 정리해 준다. 작은 우주인 우리 몸 안의 세포도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세포에 의해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사랑하며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잠깐 일손을 멈추고 가정의 균형적 안정을 위해<올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을 꼬누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