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S

검색영역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서봉석(sbs3039)
포에라마라는 장르는(Poem + Drama)시를 형용동작이 있는 일인 시극으로 좀 더 즐길 거리가 있는 입체적 종합 예술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개척하고 시연한 시인으로는 포에라머 공혜경이 있다.


시 사랑하기  바빠 늙을 틈 없네. 포에라마

블로그 상세 보기

여름 속 여름-권혁수
2023-08-05
조회수 : 378

여름 속 여름

 

권 혁 수

 

정치평론가 J교수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말로 작금의 정치언어 환경을 풍자했다. 네모난 동그라미, 가난한 부자,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형용모순(形容矛盾)의 언어가 횡횡하는 시대란다. <시원한 여름>도 그런 말들 속에 포함될까?

 

비가 며칠 동안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이번 주부터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다. 불쾌하고 짜증나는 계절이 시작된다는 사전 통보다.

 

대개 여름에는 겨울이 좋다고 하고 겨울에는 여름이 좋다고 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장마철 무더위와 열대야가 괴로워 차라리 겨울의 눈보라가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 C시의 겨울은 그다지 그립지 않다. 영하 20도는 보통이었고 사방이 창호지 문이라 웃풍이 심해 방안에 떠놓은 숭늉그릇이 볼링공처럼 방바닥을 굴러다닐 정도였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감기는 일상이었고 비염에 축농증에 하루도 몸뚱이가 따뜻하고 편할 날이 없었다. 환경질환 후유증이랄까, 트라우마랄까 오죽하면 고향을 다 바꾸고 싶어 했겠는가!

물론 C시의 겨울이 춥고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눈이 오면 산비탈에서 썰매를 타는 재미가 쏠쏠했고 호수에 나가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거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동네 형들과 꿩 사냥을 하였던 즐거움은 그나마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이다.

 

하여 간혹 한여름에 더위를 식히라고 지인들이 남태평양의 해변 풍경을 SNS로 보내오면 나는 그 추억속의 설경을 꺼내 답장을 보내주곤 한다. <하늘 눈사람>이란 내 졸시를 작곡가 한정임이 작곡하여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도 그중 하나다.

 

<하늘 눈사람>

눈이 오시네

눈사람 만들라고

 

믿음을 슬픔을 고독을 굴리고 굴려

우편함 옆에 세워두는 거야

혹시 알아 하느님이 선물 들고 내려오신다는

편지 한통쯤 있을런지

 

눈이 내 머리에 쌓이네

눈이 내 어깨에도 쌓이네

 

눈사람이 되라하네

하늘 소식을 적시네 적셔

내 몸에 돋는 소름을 읽네

 

모두 비운 뒤에 가벼이 가벼이

쏟아져 그렇게 그렇게

굴러오라고

 

눈이 오시네 눈이 오시네

 

당시에 동네 꼬마친구 중 한 명이 자기는 1년에 목욕을 60번이나 한다고 자랑을 했다. 그럼 1주일에 한 번 꼴로 목욕을 한다는 계산이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어느 집이나 가난하고 구차스러웠던 시절이라 겨우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다가 추석이나 설날이 돼서야 시내 공중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한꺼번에 벗겨내는 게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 어떻게 목욕을 그렇게 많이 하냐, 너네 집에 목욕탕도 없잖아?”

그러자 그 아이는 능청스럽게 7월과 8월에 매일 강에 나가 목욕을 한다고 너스레를 떨어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랬다. 여름이면 우리는 너나없이 강으로 몰려가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또 술래잡기를 하거나 마당에 모여앉아 하염없이 떠들며 달이 기울도록 놀았다. 실로 여름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겐 천국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다. 생활도 윤택해져서 에어컨과 목욕시설을 잘 구비해놓고 산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좋아져도 무더위와 열대야는 여전히 괴로운 것이다. 자칫 냉방병에 걸려 고생을 하거나 불면증과 고질적인 비염에 시달리는 탓이다. 물론 여름휴가를 해외로 떠나기도 하여 낭만적으로 지내는 부류도 있다지만 그들도 역시 다시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불편하고 괴로운 계절인 것이다.

 

TV에서 가끔 김형석 교수를 비롯해 100세가 넘는 분들이 들려주는 인생역정 프로가 방영되고 있다. 게다가 일간신문의 부고 란에도 작고하는 분들의 연세가 90세가 넘는 분들이 꽤나 많다. 전문가들은 의학이 더 발전해 미래에는 120세가 넘도록 살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니 오랜 세월 동안 견뎌야할 여름이 걱정이다.

물론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라며 누군가 용기를 내라고 조언을 한다.

120세를 4계절과 1년 열두 달로 적용해보면 절망할 게 아니라는 논리다.

가령 10대는 1, 20대는 2, 60대는 여름의 시작인 6, 80대는 성하의 계절 8, 12월은 120세인 겨울.......

요즘 추세가 30대 후반이나 40대에 결혼을 하는 풍토이다 보니 출산도 늦어지고 있다. 그러니 마치 3월과 4월에 파종을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따라서 60, 70, 80대는 6, 7, 8월로 오곡백과(자손들)가 무럭무럭 자라는 역동적인 계절인 것이다. 하지감자 캐고 찰옥수수도 따고 각종 과수원에 농약치고 바로 일 년 중 가장 바쁘고 땀을 많이 흘리는 때인 것이다.

그렇다. 이제 그런 7월이다. 70대의 계절인 것이다. 모두 패기만만하게 더운 땀을 흠뻑 흘리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