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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지원사업 심사제도 '신뢰'에 대한 논의

등록일 2021-11-16 등록자 회원 이미지 장석류 조회수 1,466

 

심사란 무엇일까

 

심사(審査)는 살피고() 조사하여(),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심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꼭 예술지원이 아니어도 공공행정의 영역에서는 어떤 사안이 법과 규정에 맞는지, 혹은 제한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심사제도가 필요하다. 어디까지 가능한가, 누구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왜 안되는가 등을 심사를 통해 판단하며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추진한다.

 

심사의 본질  

 

대법원에 가면 대표하는 상징물로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정의의 여신인 Justitia(유스티치아)에서 생겨났다.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저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어찌 보면 이 저울이 심사에 요체일 수 있다. 형평성(衡平)의 형()은 저울대를 의미한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바로 그 저울이다. 저울의 균형점은 규칙과 기준을 상징한다. 눈을 가렸다는 것은 사심 없이 동등하게 규칙을 적용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사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눈만 가린다고, 심의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울의 균형점에 있는 규칙과 기준을 정확하게 알고 나서, 왼쪽에 올려진 가치에 무게에 맞게, 그에 따른 등급이나 당락, 분배의 결정을 오른쪽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왼쪽에 올려진 것이 달라지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는 조절의 관점도 필요하다. 저울이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함께 논의해보고 싶은 주제) 

 

저울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일까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예술지원 심사제도는 그 신뢰를 크게 잃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기금사업 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했고(아래 바로가기 참조), 심의 개선을 위한 예술현장 토론회나 공청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도 예술지원체계 개선 연구를 비롯해 최근 대학로에 예술인이 주도하는 예술청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 것처럼, 국가 행정이 예술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배제에 대한 기억은 깊은 잔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고, 심사가 필요 없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예술지원 심사에 대한 공정성 회복을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조직의 내부자들도 그만 욕을 먹고 싶을 것이다. 무슨 말만 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실무자들도 많다. 조직의 내부자들도 어떻게 제도 개선해야 할까 고민을 해왔고, 현장의 예술가들도 목소리를 꾸준히 내었다.

 

  그렇다면 현재 예술지원 심사제도는 문제가 없을까. 블랙리스트의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예술지원의 정의의 여신이 쥐고 있는 저울은 작동이 잘 되고 있을까.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저울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일까. 정의의 여신이 한쪽 손에 든 칼을 내려놓고, 예술지원 예산을 한 손에 쥐고, 한 손에 저울을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예술의 영역은 주관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의의 여신도 어떤 미적인 취향을 가졌을지 모르겠지만 법원에 있을 때보다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정의의 여신도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저울의 균형점’, 다시 말해 판단의 기준을 찾으려 할 것이다. 당신이 심사자로 위촉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심사의 기준을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사업의 내용은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심사의 기준은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의 기준을 찾으려면, 해당 사업의 배경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하는 조직의 미션과 비전도 이해해야 한다. 해당 사업이 처음 생긴 사업이 아니라면, 최근 몇 년간 이 사업에 선정되었던 예술가 혹은 작품을 찾아봐야 하고, 그 결과물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면 더 좋다. 이 정도 범위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심사의 방향성, 기준에 대한 초점이 조금씩 명료하게 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까지 살피진 않는다.

 

심사의 기준은 누가 가장 잘 알 수 있을까. 심사자가 가장 잘 알까. 심사의 기준은 해당 사업을 설계한 담당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이후 공공기관 내부 직무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면서, 담당자가 직접 심사에 참여하거나 심사에 영향을 주는 것은 대체로 배제되는 흐름에 있다. 게다가 해당 심사를 잘해줄 것이라는 심사위원을 선택하는 부분에서도 담당자의 재량권은 사용되기 어려워졌다

 

재량권을 일부 가지고, 자신이 본 떡잎을 직접 선택하지 못한다. 신뢰가 낮아진 원인을 제공한 이유로 재량권이 압류당한 상황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제도적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예술위원회의 경우 지원사업을 선정하기 위한 과정에 담당 직원의 판단을 가장 존중한다. 민간 문화재단인 우란문화재단의 경우 예술지원 사업에서 내부 프로듀서의 재량권을 상당히 인정하면서, 사업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공공 예술기관 내부 담당자들의 판단의 경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저울의 기준점을 세우는 예술정책에 대한 소신과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지고 있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우리는 담당자의 자율적 판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을 지날 수 있어야 한다. 기계적 형평에 갇힌 심사는 정말 기회를 얻어야 하는 떡잎을 놓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에서 "저울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라고 하면,

저울은 점점 형평을 감각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뻑뻑해질 수 있다.  

 

기계적 형평에 갖혀 있는 우리는

심사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야할까. 단지,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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