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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모두 지원해주면 안 돼요? 지원사업 평가위원을 맡으며 생겼던 의문들

등록일 2021-11-27 등록자 회원 이미지 김태윤 조회수 2,010

(대중음악)비평가의 항해술③_그냥 모두 지원해주면 안 돼요? 지원사업 평가위원을 맡으며 생겼던 의문들

 

편집자 주:

 

‘비평가의 항해술’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화예술 정책과 대중음악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최근의 관련 제도와 비평가들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두 가지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3개의 원고와 1개의 좌담회 기록이 업로드 되지만 이 물음들은 이미 이전부터 있어 왔고, 따로 또 같이하여 계속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바로 명확한 답을 내리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이곳 예술청 아고라에 하나의 주제로 제안하며 이와 관련한 공론이 깊어지길 소망합니다.

 

전체 목차

① 비평가의 새로운 병참술: 지원사업을 활용하기_전대한

② “인터넷 사람”: 공식적이면서 비공식적으로_나원영

④ 종합 좌담회


 

정구원

 

고백하자면, 음악 평론가가 되기 전 이 직업이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 말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음악을 듣고 글을 잘 쓰면 되는 게 아닐까? , 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을 테니 적어도 글 말고 다른 방향으로 돈을 벌 방도는 생각해 놔야겠다.’ 비록 그 양상에 있어서 꽤 많은 변동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잘 들어맞았으며 나는 그 판단에 따라 어찌어찌 다른 노동을 진행하며 음악 평론가 활동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저러한 사전 판단에 있어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음악 평론가로서하는 일은 글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직접 경험한 바로 보나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나, 음악 평론가는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보다는 필립 말로(Philip Marlowe)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취재와 인터뷰는 평론가들의 기본 소양이며, 강연이나 세미나, 모더레이터를 맡는 등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때로는 직접 뭔가를 기획하고 관리해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 일 자체가 안락의자에서 정보를 짜맞추는 일보다 탐문 수사에 가까운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유가 중심이 되는 글쓰기 못지않게 직접적인 행동력을 필요로 하는 여러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평론가의 삶에서는 글쓰기가 지배적일 것이다라는 내 예상은 많이 깨져나갔다. 비록 그 다양한 활동이 경제적 자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것들을 꽤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글쓰기 외 활동들 중에서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두 대중음악 지원사업의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이었다.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이런 외부 활동 중 평론가가 일반적으로 글을 쓰면서 하는 일 예술 작품을 평가하고 논한다 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활동일 텐데, 나는 왜 지원사업 평가위원이란 일에 대해 위화감 비슷한 것을 느꼈을까?

 

 

서류와 점수

지원사업 평가위원을 맡게 되는 과정은 갑작스러운 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관련 기관이었고, 사업과 일정에 대한 간략한 안내를 받은 뒤 참여가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질문받는다. 얼떨떨하지만 일단 수락을 하고 난 뒤,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몇 분 정도 고민한 뒤 어떻게든 해 보자는 마음을 다진다. 그런 식으로 나는 2019년 경남음악창작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지원사업에 평가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다.

 

경남음악창작소의 사업은 음반 제작 지원사업이었다. 8억 원의 지원 규모, 음반 제작에 필요한 비용 지원뿐만 아니라 A&R과 홍보와 관련된 업계 내 경력자와의 멘토링까지 매칭해 주는 사업. 심사는 서류 심사를 우선 진행한 뒤 김해로 내려가 다른 평가위원들과 함께 최종 심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으며, 심사 기준은 뮤지션 역량발전 가능성기획 및 예산편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분 배점 평가항목
뮤지션 역량 50 25 제출한 음원 및 영상을 통해 팀의 색깔과 음악적 콘셉트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가?
25 대중음악으로서 특정한 층의 청자 및 관객을 유치할 수 있는가?
발전 가능성 25 15 경남지역의 음악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
10 경남 음악창작소의 지원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는가?
기획 및 예산편성 25 15 제작, 홍보 및 활동 계획이 우수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10 예산편성의 적정성(과다편성 여부 등)
합계 100  

2019 경남음악창작소 뮤지션 음반제작 지원사업 심사기준

 

뮤지션들이 제출한 지원 서류는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제각각이었다. 체계적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은 분들이 있는가 하면, 예산이나 계획 등이 불분명하거나 그다지 성의가 없어 보였던 서류도 있었다. 서류의 완성도를 무의식적으로 따지려는 찰나, 문득 내가 그 때까지 참여했었던 지원사업에서 신청 서류를 작성하느라 고생했던 경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도와 계획을 꾸역꾸역 채워 넣고, 어떤 항목에 예산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싸매고그것은 불현듯 다음과 같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내가 왜 서류를 평가하고 있지? 음악이 아니라?

 

지원사업, 더 정확히는 지원사업 신청 서류 앞에서 아티스트는 예술가라기보단 예술경영가, 혹은 예술행정가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소개와 계획 등을 적으라고 친절하지만 엄격하게 구획된 표들 안에 쓰여야 하는 언어는 간결함과 명확함, 구체성이 돋보여야 하는 정돈된 형식이다. 그것이 예술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창조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을 펼 생각은 없다. 정말로 지적하고 싶은 건 그러한 언어를 구사하는 데 있어서 훈련 혹은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훈련과 도움의 기회가 모든 아티스트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아티스트가 이런 지원사업 신청서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했을 때, 서류를 쓰는 데 도움을 줄 레이블, 아니면 하다못해 이런 경영행정 언어에 익숙한 주변 사람이 있는가?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거나 도움을 얻을 수 없는 아티스트가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서류를 감당해야 하는 게 맞는 상황인가?

 

자기 반성을 하면서 심사를 다시 진행했다. 서류의 형식적 완성도 대신 서류에서 느껴지는 아티스트의 성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음악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데 여기서도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음악의 무엇을 평가해야 하지? 이건 평론이 아니라 지원사업인데, 여기서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비평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이 의문은 몇 개월 뒤 평가위원을 맡게 된 또 다른 지원사업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 대중음악 온라인 홍보 지원(뮤즈온)에서 좀 더 증폭되었다. 1년 동안 진행되는 뮤즈온이란 경연 형식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우수 뮤지션을 발굴하고 여러 홍보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에서, 나는 수십에 달하는 아티스트들이 심사 형식에 맞게 제출한 영상을 보면서 역량과 연주/가창력, 표현력 등 콘진원이 지정한 기준을 가지고 점수를 매겨야 했다. 비록 이번에는 서류를 심사할 일은 없었으나, 훨씬 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뮤지션들을 지원사업 주체가 지정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물론 평가위원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뮤즈온은 5~20인의 평가위원단을 늘 유지했다) 이것은 일견 평가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치우침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처럼 보인다. 기준은 평가위원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된 뒤 적용되고, 그것이 총합 점수로 합산되면서 합의된 평가를 도출해낸다, 는 식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원 주체가 제시한 기준들은 어딘가 모르게 음악에 있어 훌륭함이라는 가치를 절대화시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화는 일차적으로 점수가 높은 아티스트는 선정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탈락이라는 지원사업의 근본적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결과 지원을 받거나, 받지 못한다 는 각 위원의 평가 기준과 사업 주체의 지원 취지에서 수반될 수 있는 다양한 논점과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 시스템적 결과에 따른 절대성이 역으로 내 평가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컨대 어떤 아티스트의 연주와 노래가 기술적으로 미숙하지만 그 덕분에정말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을 때, 평가 기준을 무시하고 그 음악가를 전폭적으로 밀어 주는 것이 맞을까? 합산 점수가 결과적으로 엇비슷해진 상황에서 크지 않은 차이로 지원 대상자 수 제한에 맞게 끊어야 할 때, 그냥 한두 팀 정도 지원 대상을 늘리자고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건데,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브레이크를 건다. 아니, 근데 공정한 게 대체 뭔데? 이렇게 자격이 있(을 법하다)아티스트를 지원해 주는 게 공정인가?

 

 

그냥 모두 지원해주면 안 돼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2019년 이후로 더 이상 나에게 지원사업 평가위원 일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조금 더 이 글을 편하게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당시의 경험에서 내가 가지게 되었던 의문은 꽤 큰 것이었고, 혹여나 평가위원을 더 맡게 되었다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모순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나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서, 이 글이 지원사업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가진 의문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원사업을 오히려 확대해 음악가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는 일일 테니까.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냄으로써 음악가들의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훌륭하지 않은음악 역시 지원함으로써 훌륭함이란 가치를 다양화하는 일. 음악가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짜임새 있는 지원을 진행하는 것은,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줄 세우기의 공정함이 아니라 줄 세우기 자체에 있다. () ’위대한 작품을 구현하는 탁월한 수월성을 가진 전문가(작가)에 대한 주목 차원이 아니라 어떤 전문가가 주목받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 ‘예술가라면, 적어도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된 존재라면, 누구라도 예술 활동을 위한 기본수당을 받을 자격이 있고, 또 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제의 전제처럼 이런 기본수당은 단체나 작품이 아니라 개별 사람에게 지급되어야 하고, 보편적 무조건적 개별적(개인적) 정기적(매년 일정 금액)으로 지급되는 것이 필요하다.”

 

- 전지영, “문화예술지원과 경쟁주의, 그리고 기본수당’”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7

 

 


 

정구원. 음악평론가 정구원은 주로 대중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비평과 글을 쓰고 있다. 대중음악의 동시대성과 그 효과에 대해서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흔히 ‘대중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지 않을 법한 ‘다른’ 음악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대중음악의 경계와 외연의 역동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웹진 [weiv]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며,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의 필진으로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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