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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새로운 병참술: 지원사업을 활용하기

등록일 2021-11-27 등록자 회원 이미지 김태윤 조회수 1,489

(대중음악)비평가의 항해술①_비평가의 새로운 병참술: 지원사업을 활용하기

 

편집자 주:

 

‘비평가의 항해술’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화예술 정책과 대중음악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최근의 관련 제도와 비평가들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두 가지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3개의 원고와 1개의 좌담회 기록이 업로드 되지만 이 물음들은 이미 이전부터 있어 왔고, 따로 또 같이하여 계속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바로 명확한 답을 내리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이곳 예술청 아고라에 하나의 주제로 제안하며 이와 관련한 공론이 깊어지길 소망합니다.

 

전체 목차

② “인터넷 사람”: 공식적이면서 비공식적으로(나원영)

③ 그냥 모두 지원해주면 안 돼요? 지원사업 평가위원을 맡으며 생겼던 의문들(정구원)

④ 종합 좌담회

 


 

전대한

 

지속불가능한 비평

아주 먼 옛날부터 비평은 생존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꽤 자명했지만,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잘 믿지 못한다. 바로 내가 그러하다. 2016년에 처음 웹진 [weiv]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비평이 나의 생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은 적어도 지속 가능한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비평이 더 이상 나의 (물질적) 생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결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활동이 될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이러한 비관적인 혹은 회의주의적인 사고는 사실상 웹진이라는 한정된 형태의 플랫폼만 겨우 남아 있는 동시대 국내 대중음악비평의 특수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일전에 "나의 비평 웹진() 사용기"에서 기술한바 있으므로 더 논하지 않겠다.)

 

물론 이는 그저 게으름과 부족함으로 인해, 내게만 해당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내가 글을 더 잘 썼더라면, 내가 더 부지런했다면, 내가 더 똑똑했다면, 내가 더 창의적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비평을 통해 생존을 이어나가고 또 지속 가능성을 담지한 활동으로서의 비평을 수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반사실적 조건문들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대신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비평가로서의 병참술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형식과 주제의 글을 쓰되, 적정 수준의 원고료를 보장하는 경우에만 비평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수정된 전략은 망하기 딱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적당한 원고료를 받고자 한다면 그 원고료를 지불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잘 맞추어 주던가, 아니면 적당한 원고료를 포기하되 쓰고 싶은 글을 자발적으로 쓰는 것으로 만족하던가 해야 하는데, 나는 둘 다 원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상적인 상황은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원하는 글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높은 원고료를 책정받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내게 주어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지원사업 활용기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대안은 예술, 특히 비평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원고료의 성격으로 지원금을 제공하는 기금 사업들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아마 대학원 입학을 기점으로?) 자연스레 나는 매해 비평과 관련된 공적 기금 사업에 지원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첫 시작은 2018년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쉐어 프로젝트: 실험실> 선정을 통해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박준우, 전대한 기획)라는 제목의 비평-전시를 개최했던 일이다. 그 후, 2020년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아고라: 서교 크리틱스>라는 제목의 비평 워크숍에 참여자로 선정되어, 70만원(세금 공제 이전)의 원고료를 지급받고 원고지 25매 이내 분량으로 "CD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비평을 썼다. 또한 올해 2021년에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음악/사운드아트 특화사업 <Sounds On>에 선정되어 200만원(세금 공제 이전, 2인 팀이라 세금 공제 후 절반씩 나눔)의 지원금을 지급받고 "'모임 별'이라는 별만들기: 성좌로서의 별(전대한, 조남준 기획)"이라는 제목으로 비평-웹을 구축하고 있다(12월 공개 예정). 내년도 2022년 서울문화재단이나 아르코의 비평/연구 관련 지원 사업도 노려볼 생각이다.

 

내가 이러한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꽤나 효율적이라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비해서 되돌아오는 보상이나 결과의 안정성이 비교적 높다고 판단했다. (비평)지원사업의 경우, 주제나 형식에 대한 제약과 같은 요구 사항이 비교적 많지 않다. 또한 사업에 대한 아카이빙 명목으로 글에 대한 출판이나 웹 플랫폼 공개를 (많은 경우) 진행하기에, 비평가가 따로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도 후작업이 무사히 잘 진행되는 편이다. 게다가, 공공 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기에 계약서에 해당하는(혹은 유사한) 서류를 쓰지 않고서 불확실하게 일에 착수하게 되는 경우가 없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정산이 아주 확실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많은 경우 원고가 완성되고 나서가 아니라 비평 수행을 지원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에, 원고 완성 이전에 원고료가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말로 원고 작성에 큰 활력이 된다.) 이러한 안정적인 요인들은 비평을 지속해나가는 데 있어서 큰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가장 큰 단점은 사업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지원 사업들은 대체로 일회성이기에 그 진행 기간이 짧다. 그래서 지원서 작성부터 최종 정산까지 3개월 정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원서는 글의 대략적인 주제 정도만을 기재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글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이전에 이미 상세한 개요를 제출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비평을 지원 사업 기간 동안 어떻게 전개해나갈 것인지도 정리하여 제출해야 하며, 더 나아가 해당 비평을 어떤 식으로 공유하고 활용할 것인지와 같이 비평을 수행한 이후에 대한 계획까지 어느 정도 세세하게 작성해야 할 때도 있다. 문제는 지원 서류의 제출 기한은 2주 남짓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지원했던 사업들은 그러했다.) 물론 부지런한 사람에게 2주는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겠으나, 일단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막연하게 소재나 한 두문장의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진득하게 오랜 시간 동안 리서치를 통해 글을 발전시켜나갈 기회가 주어지면 좋을 텐데, 대부분의 지원 사업이 그렇게까지 참여자를 기다려주진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사실상 내게 지원 사업은 기존에 구상했던 혹은 메모나 쪽글로만 품고 있던 조각글()을 확정적으로 작성하고 다듬는 과정에 가까웠다. 기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비평가(지원자)의 가능성이나 아주 작은 아이디어만을 보고 선별하여 지원할 수는 없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늘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아쉬움은 앞서 언급했던 지원 사업의 안정성과 저울질해 보았을 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감수할만한(혹은 감내할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많은 경우, 나는 막연하게나마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품고 있곤 하기에, 이를 지원사업의 타이밍에 맞추어 조금 부지런하게 구체화하여 서류를 산출해내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원사업과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품게 될 때마다 자발적으로 부지런히 글을 완성시키면 좋겠지만...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닫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비평가로서의 새로운 병참술로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채택했고, 운이 좋아서 2020년부터는 그렇게 해오고 있다.

 

 

비평가 혹은 비평-사업가/지원사업 파파라치?

나의 이러한 전략이 문제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게 나는 비평가가 아니라 일종의 비평-사업가 혹은 (비평)지원사업 파파라치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나는 최근 들어서 지원사업의 결과물로써 쓴 글만을 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보다 체제나 제도 따위를 경계하고 비판해야 하는 이가, 스스로 그 체제와 제도 내에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지적들이다. 특히 여러 지원사업들을 전전하다 보니, 종종 나 자신의 비평적 능력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행정적 언어에 대한 숙련도에 관해 걱정하고 또 안도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혹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비평에 대한 계획을 토대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는 분명 계속 경계해야만 할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병참술이 반드시 모두에게 효율적이고 추천할만한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도 없다. 나는 언어를 토대로 하는 공부와 연구를 대학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서나 연구계획서 작성에 비교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편이고 그래서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빠른 호흡으로 현장을 실시간에 가깝게 다루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보다는 연구와 비평 사이에 애매모호하게 위치하고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기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작성되는 글에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지원사업과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지원사업을 활용하는 것은 그저 전대한이라는 한 개인이 현재 구사하고 있는 비평가로서의 병참술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격과 목표와 가치관... 등에 부합하는 자신의 전략을 갖는 일일 것이다. 다만, 당신만의 병참술을 수립할 때 혹여 지원사업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게 된다면, 이 글이 부디 조금이라도 당신의 고민과 맞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가기)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기

(바로가기) 2020 아고라: 서교 크리틱스

(바로가기) 모 별'이라는 별만들기: 성좌로서의

 


 

전대한. 분석미학과 음악미학을 공부하고, 동시대 대중음악과 비평에 관하여 쓴다. 동시에, 현대 영미분석철학과 영미분석미학에서의 비개념주의(Nonconceputalism)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음악적 경험에서의 듣기, 특히 음고 지각(Pitch Perception)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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